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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신문 기고문] 대동여지도와 善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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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진

여의도연구원

발행일

2009.05.07

주요내용
  • 얼마 전 나는 여의도연구소장 자격으로 필립 티에보 주한 프랑스 대사가 주최한 오찬에 참석했다.

얼마 전 나는 여의도연구소장 자격으로 필립 티에보 주한 프랑스 대사가 주최한 오찬에 참석했다. 프랑스 대사관저에서 열린 오찬 행사는 양국의 현안을 비롯한 각종 관심사항에 대해 폭 넓은 의견을 나누는 자리였다. 현안에 대해 논의를 하던 중 나의 시선은 대사관저 천장에 전시되어 있는 대형 장식물에 고정되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천장에 조각된 것은 다름 아닌 대동여지도였다.
과학적 실측 지도의 백미로 평가받는 대동여지도는 1866년 병인양요 당시 침입과 약탈을 일삼았던 프랑스 함대를 무찌르는 데 사용되었고, 심지어 약 20년 뒤 발발한 ‘청ㆍ불 전쟁’ 때 프랑스 군대마저 이 지도를 이용해 전쟁에 임하지 않았던가!

이런 생각에 나의 눈은 대동여지도를 떠나지 않았고, 이를 의식한 듯 프랑스 대사는 이 조각에 대해 차근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문화적 자부심이 강한 프랑스인답게 문화에 대한 높은 자부심과 애정 어린 자세로 대동여지도 중 경기ㆍ영남ㆍ호남지역을 조각하게 되었다는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프랑스 대사의 친절한 설명을 따라 지도를 살펴보던 중 조각물의 오류를 발견하게 되었다. 우리 지역의 ‘善山’(선산)이 ‘先山’(선산)으로 표기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중환의 택리지에도 나와 있듯이 ‘조선 인재의 반은 영남에 있고, 영남 인재의 반은 善山에 있다’고 할 정도로 역사적으로 유서가 깊은 ‘善山’이 어쩌다가 조상의 무덤이 있는 산을 뜻하는 ‘先山’으로 표기될 수 있는지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상대방의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보란 듯이 전시해 놓는 것이 과연 문화대국이라 자부하는 프랑스의 모습이란 말인가! 이렇게 문화적 이해가 부족하면서도 병인양요 때 약탈해갔던 외규장각 도서들과 유물들을 반환하지 않고 있는 것인가!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 군대가 퇴각하면서 약탈하고 불태운 강화도 외규장각 도서들의 가치에 대해 이들은 알고 있지 못할 것이다. 조선 시대에 오랜 전란을 겪으면서 조선 왕조는 주요 기록물을 분산해 배치했으며, 특히 제일 중요한 진본을 강화도 외규장각에 보존해 왔고, 프랑스에 의해 불타 없어지기 전까지 1천700종 5천67권의 책이 소장되어 있었다. 이렇게 중요한 진본 기록들을 프랑스가 방화하고 약탈해 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동안 기회가 있을 때마다 문화재 반환을 요구해 왔던 것이며, 이것은 정당한 우리의 요구임에 분명하다.

이참에 나도 프랑스 대사에게 그들이 약탈해간 우리 문화 유산을 반환해야 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이에 프랑스 대사는 ‘이미 그 자료들은 프랑스 문화재로 등록되어 있으며, 과거 문화재를 반환한 국제적인 선례가 없기 때문에 불가능하며, 디지털 복사만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1977년에 호주는 약탈 문화재 17점을 파푸아뉴기니에 반환했고, 1978년 벨기에도 약탈 문화재 892점을 콩고에 인도했을 뿐만 아니라 1982년에 이탈리아는 밀반입된 에콰도르 문화재 1만2천점을 반환한 국제적인 선례가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1993년 9월 서울에서 김영삼 前(전) 대통령과 미테랑 前 프랑스 대통령 간의 정상 회담에서 사실상 TGV를 도입하는 조건으로 외규장각 도서 1권이 반환되었을 뿐 아직 많은 우리의 국보급 자료들이 프랑스 파리국립도서관에서 전시되고 있는 현실에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다.

문화적 가치도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프랑스가 약탈해간 우리의 소중한 문화재들은 원래 있어야 할 곳에 있을 때 비로소 그 찬란한 빛을 발하는 것이며, 우리는 외규장각 도서의 디지털 사본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한 반환을 당당히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김성조(국회의원)

 


-매일신문 발췌